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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가장 큰 계명(마 22:34-39; 막 12:28-34; 눅 10:25-28) 칼빈 주석

절제회 | 2018.07.23 11:40 | 조회 2036

가장 큰 계명(마 22:34-39; 막 12:28-34; 눅 10:25-28)

마태복음 22:34-39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ㄷ)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ㄹ)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https://www.ccel.org/ccel/calvin/comment3/comm_vol33/htm/viii.htm

칼빈은 마태복음 22장과 마가복음 12장에 쓰여진 이 대화와 누가복음의 대화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다른 점이 있음을 먼저 보인다. 그러나, 누가가 두 복음서기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다음에 있어 공통됨을 지적한다.  즉 서기관이 그리스도를 시험에 들게 하려고 질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에 의하면 서기관은 나쁜 인상을 주고 떠나지 않는다.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대답에 순응하고, 배울 수 있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그리스도께서 또한 그를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는 그가 강퍅하고 회개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기록한다.
이제 우리는 이 서기관이 그리스도께 질문한 경우가 무엇인지 살펴 보자.  왜냐하면 율법의 해설자로서, 그는 복음의 가르침에 화가났다.  그것에 의해 모세의 권위가 낮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스도께 묻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향해 사람의 증오를 일으키는 것이다. 마태와 마가는 이 계책을 한 사람에게 국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속한 분파 전체가 그가 능력과 학식에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다고 생각하여 그를 뽑아 보낸 것이다. 질문의 형식은 누가는 마태와 마가와 조금 다르다.  누가에게 있어서 서기관은 사람이 영생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다른 두 복음서 기자들에 의하면, 그는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묻는다.  그러나 그 뜻은 같다.  이는 그가 그리스도께 의심스러운 공격을 하여, 그리스도의 입으로부터 율법과 다른 어떤 것이든지 끌어내어, 그가 배도하며, 불경건하며, 반항과 선동을 일으키는 자라고 몰아 부치려는 것이다. 

누가복음 10:26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그가 기대한 것과 다른 대답을 얻는다. 참으로,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주어진 것과는 다른 어떤 거룩하고 의로운 삶의 법칙도 그리스도에 의하여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의의 최고의 완전함이라고 율법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찰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여기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질문과 일치한다. 이는 그가 절대적으로 어떻게 사람이 영생에 이르는 가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여겨지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계시기 때문이다.
율법은 정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러므로 죽음의 가르침이라고 불리우며, 바울에 의하면, 죄를 넘치게 하는 것이다 (로마서 7:13). 그것은 그 가르침의 문제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율법이 명하는 것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지만, 율법은 가장 높은 의를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를 추종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거짓되이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행위의 의를 요구하시고, 다음으로 행위가 없는 거저 주시는 의를 제시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에 따라 그들 자신에게 주시는 것임으로, 이러한 가르침을 이상한 방법이라고 여길 수 없다.  따라서 바울은 두 가지의 의를 비교한다 (로마서 10:5, 6). 이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값없이 거저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이 대답 속에서, 자신을 그 율법사에게 나타내셨고, 그의 질문의 성격을 주목하신다. 이는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 묻지 않고, 무슨 일을 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지 물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2:37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가는 그 서문에 아래 구절을 삽입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마가복음 12:29). 이 말씀은 첫째, 우리가 실제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을 예배할 때 힘에 넘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가 우리를 값없이 입양하실 때, 그를 사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들은 불신으로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친숙한 방법으로 다가오셔서, 그들에게 그가 그들과 맺으신 은혜로운 언약을 기억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그로부터 떠나지 않고 하나님 그 분만을 순수하게 예배하는데 집중하였음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신 후에 하나님께 무관심한다면, 율법을 듣는 자들을 위해서 무슨 변명이 남겨져 있겠는가?
뒤 따라 나오는 것은 모세의 기록에서 또한 발견되는 율법의 요약이다 (신명기 6:5). 이는 비록 두 돌판으로 나뉘어 있지만, 그 처음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대해 말하며, 두 번째는 사랑에 대하여, 모세가 합당하고 지혜롭게 요약을 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각 계명에서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람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배나 존경 보다, 우리로부터 사랑을 구하심이다.
 어떤 예배보다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자발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악하고 죄많은 육신의 성향은 우리를 바른 것으로부터 옆으로 끌어낸다.  모세는 우리 삶이 우리의 모든 감각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기 전까지는 바르게 규제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경건의 시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억지로 드리는 예배를 경멸하시고, 자유롭고 기쁘게 예배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에게 합당한 존경을 포함하는 것임을 우리는 또한 배워야 한다. 
모세는 마음 (mind)을 덧붙이지 않고, 다만  심령 (하트)만 언급했고, 혼 (soul)과 힘 (strength)을 말했다. 모세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완전히 사랑을 받아야 할 분임을 가르치면서, 무슨 능력이든지 사람에게 속한 것은, 이 목적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우리가 또한 아는 것은 심령이라는 단어로, 히브리어는 때때로 마음을 포함시켰다. 특히 혼과 함께 나올 때 그렇다. 칼빈은 마음은 이성의 더 높은 경지를 가리키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사고가 흘러 나오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 요약으로부터 모세의 율법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신다.  육신의 연약함 속에서, 완전한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혼의 모든 감각을 아무리 강하게 발휘해도 헛된 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말씀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행위의 외향적 나타남에 대하여 만족하지 않으시고, 좋은 뿌리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듯이, 우리 속의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마태복음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그는 두 번째 위치를 인간들의 상호간의 친절에 두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첫째 순서이기 때문이다.  우리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첫째와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처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경도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다스리지 않는 곳에는 이웃을 향한 진실한 사랑은 결코 없을 것이다.  세상 자녀들이 서로 즐거워하는 것은 돈을 주고 사는 사랑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 속에 형제 사랑을 반드시 자라나게 한다.
모세가 우리에게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했을 때, 그는 사랑과 우리 자신을 첫째 자리에 놓지 않도록 의도했다.  그래서 사람이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나서 그의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 너무 헌신되어 있으면 안된다.  모세는 이러한 잘못을 고치려고, 우리 이웃을 우리와 같은 선상에 올려 놓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우리 자신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 사람을 한 몸으로 연합하게 함이다.  우리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는 자기 사랑을 고침으로 모세는 그들 각자를 공통된 연합으로 이끈다.  마치 서로 포옹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랑은 바울에 의해서 합당하게 선포되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바울은 말한다.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 (골로새서 3:14), 다른 말씀 속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로마서 13:10).
이는 모두 두 번째 돌판의 계명들을 언급하고 있다.

누가복음 10:28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없는가는 이렇게 선포되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로마서 8:3)
두 말씀은 서로 완전히 일치한다.  율법은 사람들에게 행위로 말미암아 의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율법의 가르침 속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도이다.  한편, 무식하고 무지한 자들이 그에게 가져올 비방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시기 위하여, 율법을 떠나서, 영원한 의의 법칙을 세우신 것이다.

누가복음 10: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사람들의 위선은 두 번째 돌판에 의하여 나타난다.  이는 위선자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뛰어나게 예배하는 자들처럼 위장하더라도, 그들은 그들의 이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빛으로 드러나지 않으려고 거룩함의 거짓된 가면 뒤로 숨는다. 사랑의 시험이 그에게 좋지 않게 증명될까 두려워서, 그는 이웃이라는 단어 뒤에 숨으려고 하여, 그가 율법의 범법자로 발견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제, 율법은 서기관들에 의해 타락되었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웃들이란 그 단어를,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들로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한 이 원칙은 그들에게 받아들여져서,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미워할 권리가 있다. (마태복음 5:43). 위선자들이 정죄를 받지 않고 피하는 길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들은 율법의 심판을 받지 않으려고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멀리 떠나려고 한다.

누가복음 10:30.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그리스도께서 간단히 말씀하신다. 곧 이웃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구별 없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가 거룩한 교제의 띠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를 서로 따뜻하게 사랑하도록 이끄시기 위하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없다.  그 계명은 이렇게 더 명백하게 이어진다.  모든 사람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교만에 눈이 어두워져서, 모든 사람은 자신에 만족하여, 거의 다른 사람을 동격으로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고, 그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그들로부터 금하고 있어서, 주님은 일부러 모든 사람은 이웃들이라고 선포하시고 그 관계가 서로의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바리새인들 속에서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진 이해는, 우리의 친구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우리의 이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웃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함께 묶으셨기 때문이다. 이는 서로 돕게 하려 함이 목적이다.   유대인들은 같은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을 자랑하는 동안, 다른 나라들로부터 입양의 특권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성한 유산을 받은 자들이, 야만적으로, 다른 사람을 경멸한다.  마치 그들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잔인하도록 형제 사랑을 소홀히 여기는 그들은 비판 받아야 한다.  칼빈은 둘째 계명을 이해하면서, 우리를 서로 사랑하라는 의무 아래 우리를 놓는 이웃됨이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미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을 증명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는 사마리아인을 제사장과 레위인과 비교하신다.  잘 알려진 것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에 대하여 품는 극도의 증오심이다. 그들이 가장 그들 가까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가장 미워한다. 그리스도는 이제 말씀하신다. 여리고에 사는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여행 도중 강도를 만나 심히 상했다. 레위나 제사장, 두 사람 다 그가 길에 반 죽음을 당하여 누워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은 큰 친절을 베풀었다.  이제 물으신다. 이들 세 사람 중에서 유대인에게 이웃은 누구였는가? 여기서 거울처럼, 우리는 사람들의 공통된 관계를 본다. 유대인의 원수인 사마리아인이 쓰러진 유대인에게 보여준 동정심은 사람은 사람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충분하다. 여기서 추론하는 것은 모든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2:40 이 두 계명이. 
이제 칼빈은 마태에게 돌아간다.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그 두 계명에 국한시키도록 의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디서나 가르치는 모든 거룩하고 의로운 삶의 태도는 이 두 지도적 관점을 나타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의 총체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데 있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바울도 사랑에 대하여 선언한다.  그에 의하면,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 (로마서 13:10)
약속들과 계명들 사이에 구별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일반적으로 선언하시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합당한 방법으로 설명하심으로, 모든 계명들이 향하는 목적을 말씀하고 계신다.   같은 것이 마가에 의해 다른 말로 이렇게 표현되었다. 이보다 더 큰 다른 계명은 없느니라. (마가복음 12:31b)

마가복음 12:32.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마가만 서기관이 부드럽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이것은 주의할 만하다.  비록 그가 그리스도께 악의를 가지고 공격했고, 그를 놀라게 하려고 의도했지만, 그는 그리스도께 조용히 항복했을 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 솔직하게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그의 완고함이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저 원수들의 부류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본다.

마가복음 12:33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일부분인 제사들이 율법의 첫 돌판에 속한 것인데,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대답은 이것이다.  비록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거룩한 삶의 모든 의무보다 크게 더 나은 것이고, 더 값진 것이지만, 형제 사랑을 집어 삼킬 만큼 높게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는 대로 형제 사랑은 그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사들은 벌거벗고 공허한 것이어서, 우리 주님께서는 위선적인 외형적 경건과 진실하고 신실한 의로움을 대조시키신다.  같은 가르침이 자주 선지자들 속에 발견된다.  곧 위선자들은 제사들이 가치가 없는 것을 안다.  영적 진실이 그들과 합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형제 사랑이 소홀히 여김을 받는 곳에서는, 짐슴들의 제사들에 의해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으신다.

마가복음 12:34.  예수께서 그가 지혜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 서기관이 더 이상 말을 했는지는 불확실하나, 그는 자신이 가르침을 받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음으로,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손을 내미시고, 그를 예로 들면서, 우리들을 가르치셨다. 즉, 우리는 온순하거나, 바른 이해의 조짐이 보이면 그들을 마땅히 도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서기관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선언하신 두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쉽게 그의 의무를 하도록 설득 당했고, 그는 솜씨 있게 하나님께 드리는 외형적 예배와 필요한 의무를 구별하였기 때문이다.  그를 찬양하기 보다는 격려하려는 뜻으로  그리스도께서 그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선언하셨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를 격려하신다.  바른 길로 일단 들어간 후에는 더 큰 기쁨으로 행진할 것이다.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복음서 기자들의 주장은 대적들의 입을 닫히게 하여, 그들은 감히 그리스도 앞에 함정을 놓으려고 대들지 못하였다는 것이, 그들이 그들의 완고함을 그만 두었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의 완악함이 더 강해질수록, 그들의 반항은 더 고칠 수 없게 되었고, 그들 둘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더욱 빛나는 것이었다.  그가 거둔 이러한 승리는 우리를 격려해서 진실을 변호할 때 성공을 확신하며, 결코 사기를 잃지 않아야 할 것을 보여주신다.  원수들은 끝까지 우리들을 학대하고 모욕할 것이나,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들의 분노가 그들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실 것이며,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이길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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