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모리타니 마마
아프리카 서쪽 사하라사막 위 지독히도 가난한 나라, 모리타니.
이름도 낯선 이 나라에 20년째 기적을 만드는 한국 여인이 있다!
여자 혼자 몸으로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에서 목숨을 건 선교와 봉사!
사막보다 더 뜨거운 삶을 살아온 그녀를 사람들은 ‘모리타니 마마’라 부른다.
한국인 마마와 모리타니의 버려진 자들, 가슴 절절한 20년 감동 실화!
✿ 겨울도 눈도 추위도 모르고 살아온 모리타니 선수들이 동계 스페셜올림픽 메달을 땄다!
2013년 1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모리타니에서 네 명의 흑인 지적장애 선수들이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에 참가했다. 일평생 겨울도 눈도 추위도 모르고 살아온 그들은, 모래사막을 스키 슬로프 삼아 연습했고 모리타니 건국 이래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도 땄다. 모리타니 선수들을 이끌고 온 수줍은 미소의 한국 여인, 그들은 그녀를 ‘마마’라고 불렀다. 그들이 사막을 넘고 바다를 건너 한국 땅까지 오게 되기까지 그들과 20년간 살을 부비며 살아온 ‘모리타니 마마’ 권경숙 씨가 있었다.
✿ 죽음의 땅, 모슬렘들의 핍박, 그리고 20년… 한국에서 온 ‘마녀’에서 모리타니의 ‘마마’로!
20년 전, 난생처음 유럽 여행을 떠난 노처녀 전도사는 운명처럼 모리타니라는 나라를 만난다. 무엇에 이끌리듯 앞으로의 일생을 이 나라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그녀는 선교사 수업을 받고 파리가 들끓는 모리타니 빈민촌 모래 위에 판잣집을 얻는다. 마도로스 남편과 사하라사막 위에서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맨손으로 교회를 개척했으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남편은 3년 만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키 150센티미터 작은 거인 권경숙 선교사의 기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열기, 폐 속까지 밀고 들어오는 모래바람, 하늘을 온통 빨갛게 뒤덮는 메뚜기 떼의 습격, 그리고 그 무엇보다 무서운 모슬렘들의 핍박과 저주…. ‘마녀’라 불리며 돌팔매 당하던 그녀는 어떻게 모리타니의 ‘마마’로 불리게 되었을까.
✿ 모래땅을 농장으로, 몸 파는 여인을 사업가로, 모슬렘 현지인을 하나님의 찬미자로 바꾸다!
가난한 현지인들이 굶어 죽고 아파 죽고 싸우다 죽는 모습을 보며 저자는 결심했다. 하나님이 이 땅에 하실 일을 위해 그녀를 부르신 계획에 죽기로 순종하겠다고. 나라도 버린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을 위해 모래땅을 파고 또 파 농장을 만들었다. 몸을 팔아 빵을 사야 하는 여인들에게 바느질로 돈 버는 법을 가르쳤다. 방치된 아이들을 씻기고 가르칠 유치원을 세웠다. 잔인한 죄수들을 찾아 그들의 사정을 들어주었다. 무엇보다,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 모리타니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교회를 지켰다. 더 많은 이들을 교회로 부르고 배불리 먹일 수 있을 때까지, 모리타니 마마의 손과 발은 오늘도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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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시스 윌라드
- 세계 절제 운동의 창시자 프란시스 윌라드. 미국 노스웨스턴여자대학의 첫 학장으로 존경받았던 프란시스 윌라드는 1880년대 미국 사회의 알콜 중독과 가정 파괴 현상을 심각하게 여겼다.윌라드는 동료 여성들과 힘을 합하여 절제운동을 추진하였고, 인류 역사의 새 페이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당대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이 없어서 술로 인해 가정이 파멸로 달려가도 제도적으로 막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술 유통 불법화를 요구하며 ‘가정 보호’를 기치로 참정권운동을 시작하였다. 절제운동은 20여 만 명의 회원을 모집함으로써 당시 미국뿐 아니라...
- 관리자 2016.02.14 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