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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거룩함은 행복을, 술과 담배는 쾌락을...

한동수 | 2014.10.21 18:24 | 조회 4301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죄인의 슬픔


1.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말할 때는 항상 가지가 함께 따라오는 것을 있는데, 중의 번째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두려워하여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죄를 고백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예를 들어, 이사야 6장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서 천사들이 소리 높여 외치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외친다.

 

2. 모습을 보는 순간, 거룩하신 하나님께 압도되어 이사야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5)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 그것이 바로 이사야가 보여주는 인간의 번째 반응이다.

 

3. 가지 사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불러 모으실 때의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 베드로는 밤새 아무 것도 잡지 못하여 낙심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후에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4. 바로 베드로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능력에 놀라서 자기와 함께 물고기 잡는 일을 동업하자는 등의 제안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복음 5 8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5. 흥미로운 것은,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본인의 입으로 자신의 신성을 말씀하시거나 거룩함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존재 자체로 하나님의 위엄이 드러났음을 있다. 그리고 거룩하신 위엄 앞에 베드로의 반응은 이사야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베드로도 자기의 죄를 보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두려워 수밖에 없었다.

 

6. 교회 역사에서도 유명한 사건이 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가 가톨릭 사제가 되어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했을 때의 일화이다. 루터가 법학을 포기하고 사제가 된다고 했을 결정을 싫어하여 루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가 이제 어느 정도 루터와 화해를 하여, 아들이 집전하는 번째 미사를 보기 위해 예배당에 와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도 함께 하여 아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7. 그런데, 루터는 미사에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를 하려는 순간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기도를 하지 못한 가족이 있는 자리로 돌아와 앉고 말았다. 아버지 한스 루터는 이것을 매우 치욕적으로 생각하여 루터를 나무랐지만, 루터에게는 아버지가 모르는 사정이 있었다. 그는 “영원히 살아계시는 참되신 하나님께 드리옵니다.”라고 말하려는 순간에 자기의 몸이 굳어 버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말을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는 아무 말도 수가 없었다. 세상의 군주 앞에서도 모든 사람이 두려워 떠는데, 그보다 위대하신 하나님께 감히 무슨 말을 수가 있겠는가? 거룩하신 앞에서 눈을 들고 손을 들어 올리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천사들이 그분을 에워싸고 있다. 분의 손짓 하나에 세상이 흔들린다. 피그미처럼 작고 비참한 내가 어찌 '이것을 원합니다. 그것을 바랍니다'라고 말할 있겠는가? 나는 먼지와 재요 죄가 가득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내가 영원히 살아 계시는 되신 하나님께 무슨 말을 있단 말인가?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Roland Bainton, Here I Stand, 30)  

 

8. 루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하려고 마디를 뱉는 순간, 하나님의 거룩하심

위엄에 압도당했다. 자기의 죄성이 보였다. 감히 하나님 앞에서 없음을 보았다. 루터

에게도 두려움이 찾아온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성품을 선물로 받은 은혜


1. 그런데, 그러한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놀랍고 신비한 사랑을 베푸셔서 그들을 자녀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아름다운 성품을 전해주셨다. 성령께서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빛을 비추어주실 거룩하심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2.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전해 받은 성도들은 이제 이상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죄로 인해 슬퍼하거나, 절망하지도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셨기 때문이다. 대신 이제 성도들에게는 소망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함을 더욱 사모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선물로 받은 성도들은 거룩함을 그저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거룩한 삶을 사모하는 사람들로 살아갈 있다.

 

3.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요한일서 3 9절이 말씀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완전한 거룩함을 넣어준 것이 아니라 거룩함의 시작인 씨를 넣어주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었지만 아직 온전히 거룩하지 않다. 더욱 거룩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속에 이미 씨가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이 자라서 맺게 아름다운 열매를 소망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사는 것이다.  

 

4. 우리는 이상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두려워 떠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

심의 씨를 우리에게도 전해 주셔서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거룩함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다.

우리의 죄를 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고, 우리에게 거룩한 씨를 심어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면서 이제는 우리도 거룩함을 소망할 있게 것이다.

 

거룩함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1. 그렇다면 거룩함이란 무엇인가? 거룩함은 지성과 인격을 가진 존재의 도덕적인 탁월함이다.

성과 인격을 가진 존재는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천사들과 마귀가 있다. 그런데, 천지 만물

중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완전하시므로 그분의 도덕적 탁월함

가장 완전하며 따라서 가장 거룩하시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 아름다운 도덕적 탁월함

추구하게 하신다.

 

2. 사람에게는 누구나 아름답고 탁월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탁월함은 도덕적인 탁월함이다. 거룩함이다. 모든 사람에게 탁월함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도덕적인 탁월함,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우리에게 어떤 부담이나 짐이 없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즐거움과 기쁜 소망이어야 한다. 거룩함은 추하고, 무겁고, 어둡고, 우울하고, 침울한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가볍고, 밝고, 생기 있고, 생명력 있는 것이다. 그것을 추구할수록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3. 우리는 여기에서 행복과 쾌락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쾌락과 재미를 추구하려는 경향도 있는데, 행복과 쾌락은 서로 다르다. 예컨대, 흡연은 사람에게 쾌락을 가져다준다. 담뱃갑에는 분명히 폐암을 유발할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붙어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쾌락에 손을 댄다. 마치 그로 인해 폐암이 걸렸을 자기의 행복이 송두리째 날아갈 것이라는 예측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4. 흡연의 폐해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그것이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접근할 그것은 단순히 건강의 문제만은 아니다. 흡연은 일종의 중독이다. 담배에 자기의 육체와 정신이 빼앗긴 상태가 되는 것이다.

 

5. 후대에 존경받는 목사가 마틴 로이드 존스는 목회를 하던 젊은 시절에 골초라 불릴 만큼 담배를 많이 피웠다. 그런데 어느 자기를 찾아온 성도가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담배를 찾아 물려고 했지만 사무실에 담배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부터 로이드존스는 안절부절못하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기가 담배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의 영혼이 그것에 빼앗겨 있어서 성도의 이야기가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로이드존스는 크게 깨달음을 얻은 후로 담배를 끊었다. 현대에 개혁주의 신학자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R. C. 스프롤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6. 음주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음주는 언제나 쾌락을 동반한다. 괴로움을 잊고 잠들고 싶을 , 친구들과 동료들과 재미를 추구할 언제나 술은 우리에게 쾌락을 가져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가게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알코올이 미혼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불임의 확률을 높이고, 출산하는 아기의 알코올 신드롬 발병 확률도 천문학적인 숫자로 높인다. 불임과 기형아 출산은 결코 행복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쾌락을 위해 행복을 포기한다. 특히, 음주는 흡연과는 차원이 다르다. 알코올 자체에 중독된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인 음주는 사실상 쾌락과 재미에 대한 중독이다. 그것이 자기에게 가져다 부수적 효과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7. 행복과 쾌락은 사실상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것이 설사 영적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름답고 탁월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쾌락과 재미를 절제하며 살아야 목표를 이룰 있다. 그런데 하물며 영적인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자신의 육체의 쾌락과 재미를 포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8. 죄에 이끌리는 삶은 우리를 행복하게는 하지 못하지만, 우리에게 쾌락을 가져다주기는 한다. 쾌락은 재미이다. 모든 쾌락이 죄는 아니지만, 쾌락을 유발하는 죄가 허다하다. 우리는 쾌락을 포기하지 못해서 여전히 죄를 짓고 있지만, 중요한 진리는 쾌락과 재미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9. 비단 흡연과 음주뿐만 아니라, 우리가 짓는 대부분의 죄들은 모두가 쾌락과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자기의 육신의 행복과 안일을 추구하는 것들이다. 음란과 거짓과 탐욕과 교만과 다툼 등의 죄들을 생각해 보라. 모두가 하나 같이 자기의 쾌락, 재미, 유익 등과 관련이 있음을 있다.

 

10.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가운데 빠지지 않을 있는 존재가 되었다.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신분이다. 우리는 이러한 쾌락과 재미, 유익을 추구하지 않을 있는 거룩한 씨를 가진 사람들이다. 일차적으로, 죄를 짓지 말라는 율법적인 명령이 아니라, 우리의 신분에 근거하여 확신을 심어주고 격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가벼운 덕담이 아니라 명령이기도 하다. 거룩해져야 한다는 명령이다.

 

11. 앞서 말했듯이, 거룩함은 탁월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삶이 아니라 행복하고 즐거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기 속에 있는 씨가 점점 자라서 거룩한 열매들을 맺는 것을 보는 것보다 기쁘고 즐거운 일은 없다. 거룩해지면 거룩해질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닮는 것이기 때문에 즐겁다. 우리의 영혼에 거짓과 더러움이 점점 사라지고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즐겁다. 거룩함은 우리 영혼이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을 경험하는 것은 즐거움이 아닐 없다.  

 

12.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의 자서전에서 거룩에 대한 그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거룩함은, 내가 묵상집에 기록한 바와 같이, 내게는 달콤하고, 유쾌하고, 매력적이고, 평온하고, 차분한 성품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없는 순수함과 밝음과 평화로움과 황홀함을 영혼에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거룩으로 인해 영혼은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는 하나님의 꽃밭처럼 됩니다. 영혼의 꽃밭에는 달콤한 고요함이 있고 태양 광선이 부드럽게 생기를 줍니다. 참된 성도의 영혼은 봄철에 있는 작은 꽃과 같습니다. 위에서 작고 겸손하게 있으면서 꽃봉오리를 열고 태양의 광선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사방에 향기를 진동시키면서 주위의 다른 꽃의 한가운데서 평화롭고도 사랑스럽게 피어있습니다. (Personal Narrative, 796)

 

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기쁨과 즐거움을 맛볼 기회를 주셨다. 단지 추악한 죄가 사라진 것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자리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심어주신 것에 대한 기쁨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그것을 우습게 여기고 쾌락과 재미에 우리를 방치할 이유가 없으며 결코 그렇게 해서도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쁨이 배가되고 극대화될 있도록 더욱 힘써야만 하는 것이다. 씨가 열매를 맺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햇빛과 물을 공급하여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거룩에 이르는 길은 인내를 요구한다. 인내로써 경주를 이겨내는 동안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거룩함에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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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쾌락이 다르고, 거룩함은 무겁고 힘든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임을 알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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