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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나의 종을 보라”(이사야 42:1) 칼빈의 주석

절제회 | 2018.07.23 11:24 | 조회 3345

칼빈의 주석 이사야 42:1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나의 종을 보라”
이사야 선지자는 42장에서 주제를 새롭게 바꾸어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중보자가 우리 사이에 오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에서 너무 멀리 떠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과 어떠한 축복에도 우리는 참여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주께서 유대인들에게 구조하실 것을 약속하셨을 때, 주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더 높이 고양시키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육체적 자유와 유대 땅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크고 더욱 값진 선물을 바라보도록 하셨다. 왜냐하면 그러한 축복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이 마침내 얻게 될, 또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구속의 첫 맛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의 백성의 귀환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만약 주께서 지속적으로 그의 교회의 구속자이심을 그 때 스스로 나타내지 않으셨다면, 정말 불완전했다. 그러나, 칼빈이 이미 말한 대로, 바벨론 포로기의 종식은 교회의 완전한 회복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만약 선지자들이 은혜의 시작을 그리스도의 통치와 엮어서 말씀한다면 우리는 의아해 할 필요가 없다. 이는 이어진 사건들이 많은 말씀 속에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나아 와야 한다.  그가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화해될 수도 없고,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의 몸 안에 심겨져서, 하나님의 자녀의 수 안에 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서 분명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그리스도를 처음 난 자요, 머리가 되신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나오는 말씀은 어떤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없는 것이며, 복음서 기자들은 모든 논쟁 위에 그것을 두고 있다. (마태복음 12:17-21)

그는 그리스도를 그의 뛰어남에 있어서 “종” (“나의 종을 보라.” 헨 아버디, הֵ֤ן עַבְדִּי , 이사야 42:1 )이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모든 경건한 자에게 속한 명칭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끄시고, 그들의 삶 전체가 그에게 순종하는 조건으로 입양하셨기 때문이다. 교회의 공적 위치를 받은 자들도 특별하게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명명된다. 그러나 더욱 특별하게 이 명칭이 그리스도께 온전히 다르게 속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로를 소문자로 여러 종들 중에 하나로가 아니라 대문자로 특이하게 종 (Servant)으로 고유명사로 부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로 하여금 가르치거나 특별한 일을 하도록 명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부르시어 다른 어떤 일들과도 같지 않는 전혀 없던 일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종”이라는 명칭은 사람에게 주어진 것으로, 그의 인간성을 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신적 성품은 영원하고, 그는 항상 아버지와 동등하고 완전히 일치하는 영광을 항상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육신을 입어야 했을 때, 그는 순종에 복종해야 했다. 그래서 바울도 말한다.

“본래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빌립보서 2:6).
그가 종이 된 것은 자발적인 행동에 의해서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지위로부터 어떤 것을 빼야 했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고대 교회 작가들은 “Dispensation” (베풂)이라는 단어로 이것을 설명하는데, 그것을 통해서, 그들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가 우리를 섬기게 되는 길을 열었고, 한편, 지극히 낮은 상태에서 그 자신이 여전히 가장 높은 위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방해 받지 않게 했다.

“내가 붙드는.” “붙드는” (  אֶתְמָךְ , 애트맠, 이사야 42:1) 이라는 동사는 능동형으로 바르게 칼빈은 이해하고 있다. “내가 그를 높이 들리라” 혹은 “내가 그를 높이리라” 혹은 “내가 그를 후원하리라”와 같은 뜻이며, 바로 뒤이어 나오는 말씀, “내가 나의 영을 그 위에 두리니”에서 같은 뜻을 반복하고 있다.

앞선 구문에서, “내가 붙들리라”고 했던 것처럼, 뒤에서, 같은 자세로 주께서 그의 영으로 그를 이끄실 것을 말하여, 주께서 그리스도를 모든 일에 도우셔서, 그로 하여금 어떠한 어려움에도 압도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의미한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셔야 한다. 이는 그가 신성한 직책을 감당하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렇게 큰 일은 인간의 힘으로는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택한 자.” 이 말씀에서 “택한 자”는 많은 다른 구절에서와 같이 “뛰어님”을 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한창일 때를 택한 젊은이들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26:2; 사무엘하 6:1.) 여호와는 그러므로 그를 불러서 “뛰어난 종”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가 화해의 말씀을 전하며, 그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에 의해 명령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우리가 감당 못할 사랑을 나타내는데, 그 사랑으로 주께서는 우리 모두를 그의 유일하신 독생자 안에서 안아주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격 속에서, 우리는 영생의 소망가운데 입양되어, 택하심을 받는 것을 뛰어나게 나타내시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하늘의 능력은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 거하고 있어서, 우리는 그가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의 육신과 피를 보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더 높여서, 그가 하시는 것이 모두 신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기뻐하는 자라”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을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3:17), 그만이 홀로 사랑받으시는 분임을 우리는 배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중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의 은총을 얻을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서 기자들은, 바울이 우리는 “사랑하는 자 안에서” 그 때문에 그와 같이 사랑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에베소서 1:6),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마태복음 12:18).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채우심을 받을 것은 그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멀리 넓게 퍼뜨리게 하기 위하여 임을 보여준다.

“그는 열방에 심판을 나타내리라” “
“심판”이라는 단어는 히브리 작가들 사이에 “명령하다, 다스리다, 통치하다”를 뜻한다.  그리고 이 심판은 유대 땅 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비칠 것임을 말한다.  이 약속은 특별하게 새롭고 이상한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 땅에만 하나님이 알려졌다고 했고 (시편 76:2)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는 모든 확신이 닫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분명한 증거들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을 확신해야 함이다.  왜냐하면 다르게는 우리에게 이 약속들이 속하지 않았다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온 세계를 하나님의 권위와 그의 순종에 복종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이것은 그리스도 없이는 모든 것이 혼돈이요, 무질서이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오시기 전에는 우리 가운데 올바른 통치가 있을 수 없었고, 그러므로 우리가 평안하게, 공정하게 통치를 받으려면, 우리는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의 나라의 본질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속한 것이라는 데서 이 다스리심에 대하여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한 양심과 삶의 의로움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본다.  인간의 모든 삶이 아담의 타락으로 각 방면에서 부패되었으니,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의 영의 신령한 능력으로 우리 성품을 변화시키셔서, 우리로 새 생명으로 다시 지으셨다는 것이다 (참조 로마서 6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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